1. 같은 검색어를 다뤄도 원고의 깊이는 달라진다
로펌에서 마케팅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같은 분야를 다루는 글인데도 내용의 깊이가 달라지는 순간을 만난다. 마케터가 담당 변호사에게 실제로 맡아온 사건을 얼마나 자세히 물었는지, 상담에서 어떤 질문이 반복되는지 알고 있는지에 따라 글에서 설명할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로펌 마케터가 우리 로펌이 실제로 어떤 사건을 맡고,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뢰인이 어떤 사정으로 상담을 요청하는지, 재판에서 무엇을 다투는지, 변호사가 어떤 자료와 증거를 확인하는지 알아야 구체적인 콘텐츠를 기획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사건 자료를 마케터가 열람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업무상 공유받을 수 있는 자료와 설명을 바탕으로 필요한 내용을 확인하고, 의뢰인의 비밀과 공개 범위를 함께 살펴야 한다.
법률 도서와 판례를 읽으며 공부하는 일도 필요하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우리 로펌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해왔는가’를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내가 소개할 전문가의 실무를 자세히 알아보는 데서 원고 작성을 시작하는 이유다.
2. 같은 재산분할 주제에서도 물어볼 내용은 달라진다
‘이혼 재산분할’이라는 주제로 글을 기획한다고 해보자. 재산분할의 대상이나 비율을 정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도 있다. 여기에 담당 변호사가 맡아온 사건을 함께 살펴보면 더 구체적인 질문이 나온다.
배우자가 운영하는 회사의 지분 가치가 중요했던 사건도 있고, 비상장주식이나 주식매수선택권, 퇴직금을 받을 권리, 신탁재산을 검토해야 하는 사건도 있다. 어떤 재산이 있는지에 따라 확인할 자료와 독자에게 설명할 내용이 달라진다.
콘텐츠를 기획할 때 던져볼 질문
- 배우자가 가진 비상장회사의 지분은 재판에서 어떻게 가치를 평가할까?
- 상대방이 숨겨둔 비상장주식이 의심될 때 어떤 회계 자료를 확인하고, 사실조회 신청은 어떻게 검토할까?
이런 질문을 변호사에게 건네면 실제 사건에서 어떤 증거가 중요했는지, 의뢰인이 상담 전에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지 들을 수 있다. 답변에 필요한 법률 검토는 변호사에게 맡기고, 마케터는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질문과 설명의 순서를 정리한다.
공개 가능한 수행 경험까지 함께 확인하면 독자도 그 변호사가 어떤 업무를 해왔는지 알아보기 쉽다. 비슷한 문제를 맡았던 경험과 실제로 한 일을 설명하되, 과거의 결과가 다른 사건에서도 같을 것처럼 표현하지 않는다. 사건을 알수록 제목과 본문에 담을 구체적인 내용이 많아진다.
3. 상담에서 쓰는 말은 좋은 글의 시작이 된다
나는 새로운 콘텐츠의 주제를 찾을 때 상담에서 반복되는 질문을 유심히 살핀다. 같은 분야의 문의라도 의뢰인이 겪는 상황과 궁금해하는 내용은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상속 문제라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다. 아래 문장은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예시다.
같은 상속 문제에서도 달라지는 질문
- “부모님이 돌아가시자마자 형제가 유산을 마음대로 처분했습니다.”
- “부모님 생전에 다른 형제 한 명에게만 모든 재산이 증여됐습니다.”
- “해외로 이민 간 상속인과 몇 년째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모두 상속에 관한 이야기지만, 각 상황에서 먼저 설명해야 할 내용은 같지 않다. 절차 자체를 몰라 막막한 것인지,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할지 궁금한 것인지, 자신의 상황으로도 상담받을 수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인지 살펴야 한다.
의뢰인이 쓰는 표현에는 법률 용어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질문이 담겨 있다. 그 표현을 살펴보면 글에서 먼저 답해야 할 내용을 찾을 수 있다.
상담 질문과 함께 변호사의 수행사례, 최근 판례에 대한 해설도 확인한다. 이미 맡았던 사건과 관련된 질문이라면 당시 경험을 본문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변호사와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 상담 내용을 그대로 공개하지 않고, 당사자를 알아볼 수 있는 정보는 제외한다. 공개 가능한 사실과 설명을 확인한 뒤 주제를 정한다.
4. 필요한 정보는 마케터가 먼저 찾아야 한다
로펌 안에 사건 기록과 경험이 쌓여 있다고 해서 자동으로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는 재판과 서면을 준비하고, 재판 서류·일정을 담당하는 직원은 제출 자료를 챙기며, 상담 담당자는 문의와 예약을 처리한다. 각자 맡은 업무가 바쁘다.
마케터가 필요한 내용을 정리해 요청하지 않으면 좋은 소재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지나갈 수 있다. 나는 사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다음 내용을 더 확인하려고 한다.
사건 이야기를 들은 뒤 확인할 네 가지 질문
- 재판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쟁점은 무엇이었나요?
-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 변호사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맡으셨나요?
- 그 설명을 확인할 수 있는 판결문이나 서류가 있나요?
- 의뢰인의 비밀을 지키면서 외부에 공개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처음에는 답변에 나오는 용어가 낯설고, 무엇을 더 물어야 할지 막막할 수 있다. 모르는 내용을 따로 적어두고 찾아보며 다시 확인한다. 질문과 답변이 쌓이면 다음에는 필요한 자료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요청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원고가 필요할 때마다 같은 확인을 처음부터 반복하지 않도록 기록해 두는 것이다. 사건 분야, 핵심 쟁점, 담당 변호사의 실제 역할, 사건의 결과, 공개 가능한 근거 자료를 정리한다. 상담에서 반복되는 질문도 함께 모아두면 다음 콘텐츠를 기획할 때 참고할 수 있다.
5. 변호사의 판단을 의뢰인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옮긴다
법을 해석해 사건에 적용하고 재판 전략을 정하는 일은 변호사의 전문 영역이다. 마케터는 그 설명을 충분히 이해한 뒤, 의뢰인에게 필요한 내용을 정확하고 쉬운 말로 옮겨야 한다.
초안을 다듬을 때도 확실하지 않은 내용을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덮어두지 않는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표시하고, 왜 그런 설명이 필요한지 다시 묻는다. 법률적 판단과 사건의 사실관계는 담당 변호사의 최종 검토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마케터도 변호사가 사건을 바라보는 방식과 중요하게 보는 증거, 판단 기준을 배우게 된다. 프로필에 적힌 분야명만 읽을 때는 알기 어려웠던 경험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경력을 소개하는 방식에 관한 생각은 변호사 경력을 마케팅에 담는 일에서 조금 더 자세히 썼다.
6. AI로 아낀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인가
나도 원고의 개요를 잡거나 문장을 정돈할 때 AI 도구를 활용한다. 자료 조사와 초안 편집에 쓰는 시간이 줄어들면, 변호사에게 한 번 더 질문하고 설명을 뒷받침할 근거를 확인하는 데 시간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 로펌이 실제로 맡았던 사건과 변호사의 경험은 담당자가 찾아서 정리해야 한다. 상담에서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사건 초기에 왜 특정 회계 자료를 먼저 검토했는지까지 기록과 설명을 제공받지 않은 AI가 알아서 알 수는 없다.
마케터는 업무상 공유받을 수 있는 자료를 골라 내용을 정리하고, 변호사나 담당자와 공개 가능한 범위를 확인한다. 어떤 경험을 소개할지, 의뢰인의 비밀을 지키면서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과정은 여전히 필요하다.
법률 설명이나 판례 요약에 AI를 활용했다면 법 조문과 판결문 원문을 대조하고 변호사의 검토를 받아야 한다. 작성 속도가 빨라져도 사실을 확인할 책임은 줄어들지 않는다.
내가 오래 남길 만한 콘텐츠를 고민할 때 먼저 돌아보는 곳은 로펌 안이다. 의뢰인이 했던 질문, 변호사가 맡았던 사건, 그 사건을 돌아보며 나눈 대화가 있다.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록해 두면 시간이 지난 뒤 비슷한 문제로 검색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다.
로펌 마케터가 사건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결국 내가 소개할 전문가가 실제로 한 일과 그 경험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하기 위해서다. 나는 이 기록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원키가 지향하는 ‘남는 마케팅’의 바탕이라고 생각한다.